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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물/영상자료

세계사 중 중국사 춘추전국, 진나라, 한나라 역사에 대한 강의 내용

뉴탐스런 세계사 8강에서는 중국사 춘추전국 시대, 진나라, 한나라에 대해 다루웠습니다. 중국의 연대기를 살펴보면 하-상-주-춘추전국-진-한-위진남북조-수-당-5대10국-송-원-명-청나라가 있습니다. 이번 강의에서는 춘추전국 시대와 진나라, 한나라에 대해서 설명해주셨습니다. 춘추시대는 5패 전국시대는 7웅이 있었는데 BC 8C-3C정도되는 연대입니다. 춘추 전국시대에 정치는 주나라를 존중하는 사상이 펼쳐졌다가 이후에 강자가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사상이 펼쳐집니다. 행정단위를 두어 다스린 군현제가 등장했고 부국강병책이 쓰였고 철제무기를 사용하면서 싸움의 규모가 확대되었습니다. 경제에서는 소로 경작은 하는 우경이 시작되어 농사가 시작되었고, 철제 농기구가 보급되었습니다. 청동화폐가 쓰였는데 농기구 모양의 포전과 칼 모양의 도전이 있었습니다. 우경의 시작은 사람의 힘으로 농사를 지을 때보다 효율이 매우 높았기 때문에 농사가 발전할수 있었습니다. 소 한마리가 사람이 하는 일의 10배정도를 해낸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사회 문화에서는 가문보다 능력이 중시되고 부국강병을 뒷받침해주는 제자백가가 있었습니다. 유가에서는 인위적 질서를 강조하며 예와 인, 효를 중시했는데 주요 인물로는 공자가 있고 인간은 원래 선하다고 주장하는 성선설을 펼친 맹자, 인간은 원래 악하다고 말하는 성악설을 펼친 순자가 있었습니다. 법가 사상은 순자의 성악설을 기본으로 하여 엄격한 법치를 주장했는데 신상필벌이라하여 잘하면 상을 주고 못하면 벌을 주는 제도가 있었고, 조금은 강한 성향으로 사람들을 다스렸는데 주요 인물로는 한비자와 이사, 상앙과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예전에 학생들을 가르칠때 무섭고 강한 방법으로 학생들을 지도하셨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면 유하고 선한 방법이 더 효율적인것 같다는 말을 하셨습니다. 도가에서는 무위자연을 주장했고 주요인물로는 노자와 장자가 있어 이를 노장사상이라고 합니다. 묵가에서는 차별없이 사랑하라고 가르쳤는데 노동을 하고 절약하자고 말했으며 주요인물로는 묵자가 있습니다. 가문보다는 능력이 중시되면서 다양한 철학들이 빛을 내는 시대인것 같습니다.


8강에서 캡쳐한 사진-춘추, 전국 시대


BC 221년 진나라는 법가의 강력한 사상을 이용하여 통일을 이뤄 냅니다. 진시황제는 중앙집권을 강화했으며 흉노로 부터 기마기술와 철제무기를 강화하면서 전국을 통일합니다. 전국에 군현제를 실시했으며 군현제에 필요한 도로망을 정비했습니다. 통일의 아버지라 불리는 진시황제는 문자와 도량형, 화폐를 통일했으며 이에 그치지 않고 사상까지 통일하려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책이 불살라지고 학자들이 죽은 분서갱유가 일어납니다. 창조과학에서 한문과 성경의 내용을 다루웠을때 분서갱유로 인해 많은 책이 사라지면서 한문에 남아있던 성경의 내용이 많이 소실되었다고 들었던 적이 있었는데 진시황제가 분서갱유를 하지 않았다면 더 나은 상황이 되었을것 같아 아쉬웠습니다. 진나라의 건축물로는 유명한 만리장성, 아방궁, 시황릉이 있습니다. 만리장성은 흉노족과 같은 이북의 침입을 막으려 세운걸로 만리가 된다고 하니 정말 막대한 건축물인것 같고, 커다란 궁궐인 아방궁과 수많은 병마용이 발견된 시황릉도 대단한 건축인것 같습니다.

하지만 당시 진나라 사람들은 이러한 대규모 공사로 인해 불만이 생겼고 진승 오광의 난을 통해 저항합니다. 진나라는 20년 안되어서 지고 마는데 진시황제의 무리한 건축과 사상 마져 통합하려 분서갱유등을 일으킨 점도 하나의 원인이 되는것 같습니다. 시황릉의 병마용은 사람의 표정이 하나도 같은것이 없고, 말의 모습도 모두 제각각이라고 합니다. 진나라의 화폐로는 반양전이 있었습니다.


8강에서 캡쳐한 사진-진, 한의 영역과 장건의 이동 경로


진나라에 이어 한나라가 들어서는데 한 고조는 유방입니다. 초한지를 읽어본적이 없지만 초나라의 항우와 한나라의 유방이 맞썻던 내용으로 알고 있습니다. 결국 한나라의 유방이 승리했는데 한나라는 봉건제와 군현제를 합친 군국제를 시행했습니다. 호족세력이 막강했는데 한무제가 들어서자 중앙집권 체제가 잡혔고 군국제에서 군현제를 실시했으며 유교를 국교화 시켰습니다. 한무제는 싸움에 능했는데 영역을 확장시켜나갔습니다. 북으로는 흉노를 정벌했으며 동으로는 고조선을 물리치고 4군을 설치했고 남으로는 베트남을 쳐서 9군을 설치했습니다. 서로는 장건을 파견해 대월지와 동맹을 맺어 흉노를 치려고 했는데 100명의 부하를 이끌고 대월지를 향한 장건이 흉노에 붙잡히고 도주해 대월지와 협약을 맺으려 했지만 대월지가 흉노를 치겠다는 의지가 없어서 한무제의 계획대로 흉노를 치는데 대월지의 힘을 빌릴수 없었습니다. 한나라는 이런 영역확장으로 인해 국가재정이 약화되어 통제경제를 실시했는데 소금과 철을 나라에서 관리하는 전매제를 실시했으며 지역적으로 물가를 조절하는 균수법을 썻고, 시간과 계절에 따라 물가를 조절하는 평준법을 써서 곡식이 많을때는 곡식을 저장했다가 곡식이 적어지면 내다 파는 방법등을 썻습니다. 진나라에 반양전이 있듯 한나라에는 오라는 화폐가 있었습니다. 한나라 전반기 이후에 외척세력들중 왕망의 신나라가 있었는데 토지를 국유화하려했고 노비 매매를 금지했다고 합니다. 후한에는 도교의 태평도와 오두미도가 있는데 태평도는 황건적의 난이 일어났던 배경이 되었습니다. 사회 경제에서는 호족이 강했는데 정치에서 지방의 추천을 받아 관리를 등용하는 향거리선제가 있었고 경제에서는 대토지를 소유했는데 한전제를 통해 토지 소유권을 제한시키려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한나라의 문화로는 훈고학이 발전했는데 이는 진나라에 분서갱유로 소실된 책들의 복원에 대해 생각했던 것이며 이때 불교가 전래 되었고 제지술이 발전되었습니다. 한나라는 수도를 장안성으로 했으며 유명한 역사책으로 사마천의 사기가 있고 후한에 반고가 쓴 한서라는 책이 있습니다. 1강부터 7강까지 여러 지역의 역사를 배웠고 아시아의 중심이 되는 중국의 역사를 배워나가니 여러가지로 역사들이 정리되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어지는 중국사 강의도 집중해서 들어서 역사에 대해 체계적으로 배워나가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