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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물/영상자료

오스만제국, 티무르제국, 비잔티움제국 등 서아시아 역사 이야기

뉴탐스런 세계사 6강 강의를 들었습니다. 지난 5강 강의에 이어 6강에서는 서아시아사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9C-10C 아바스 왕조가 약해지며 아바스 왕조는 기마술이 튀어난 튀르크 족을 용병으로 쓰는데 용병인 튀르크 족이 욕심이 생기면서 11C-13C 셀주크 튀르크가 서아시아 지역에 나타납니다. 셀주크 튀르크는 종교를 이슬람으로 개종했으며 바그다드를 점령하였습니다. 종교와 분리된 정치적 지도자인 술탄이 등장합니다. 예루살렘 지역까지 점령을 하면서 비잔티움 제국과 마찰을 일으키며 십자군 전쟁의 원인을 만들었습니다. 서유럽 크리스트교인들이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해 8차례에 걸쳐 펼쳐진 십자군 전쟁을 통해 역사적으로 비중이 높은 지역은 다툼을 일으킬수 요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셀주크 튀르크는 13C 몽골에 의해 멸망하고 맙니다. 서아시아 지역은 대륙을 잇는 중간에 위치하여 그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수많은 전쟁과 다툼이 있었습니다. 한반도 역시 지리적으로 매우 비중이 높은 지점에 있기 때문에 근대화 과정에서 열강들의 간섭과 교섭 요청을 받아왔으며, 과거 역사를 통해서도 많은 전쟁이 있어왔습니다. 지리적 특성으로 유리함과 불리함이 있기 때문에 어느 한쪽만 생각해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불리하고 어려운 점은 지혜를 모아 잘 버텨내고 위기를 잘 넘겨야 될 것 같습니다.


6강에서 캡쳐한 사진-셀주크 튀르크의 발전


14C-15C 티무르 제국이 있습니다. 티무르는 조금 특이한 사람이었는데 혈연적으로는 튀르크족이었고, 종교는 이슬람교를 지향했습니다. 그리고 티무르 제국은 몽골제국의 부흥을 모토로 하여 통치되었습니다. 광대한 영토를 바탕으로 동서 무역을 독점하면서 큰 이문을 남겼고 수도는 사마르칸트로 했습니다.  이슬람문과 페르시아 문화, 튀르크 문화에 중국 문화까지 더 하면서 복합적인 문화를 보여 주는데 이는 티무르의 독특한 성향과도 연결이 되는 점이 있는것 같습니다. 후에 명나라까지 원정을 떠나나 원정 중에 티무르가 병사하고 티무르 제국은 쇄락에 길에 접어들고 우즈베크족에 의해 멸망당합니다. 영토를 확장 하기 위해서는 그 만큼 전쟁을 해야 한다는 점을 역사를 공부하면서 배웠고 생각해 보면서 큰 영토에 대한 영광과 자긍심, 위대함을 인정하지만 크 만큼 많이 사람들이 다치고 죽었다고 생각을 해보니 영토가 넓었다고 다 좋았던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16C-18C에는 사파비 제국의 들어서는데 이란의 민족 국가 부흥을 실행하였고 국교로 소수파인 시아파의 이슬람교를 선택했습니다. 수도는 이스파한으로 했으며 바그다드를 탈환했고 비단산업을 국유화 시켰습니다. 아프칸족에 의해 나중에 멸망당합니다.


13C-20C 오스만 제국이 있는데 15C에 메흐메트 2세는 비잔티움제국을 정복합니다. 콘스탄티노 폴리스의 이름을 이스탄불로 바꾸었습니다. 오랜 분열과 내분으로 오스만 제국을 막기 버거웠던 비잔티움제국은 오스만 제국의 육, 해군 합동공격을 막지 못하고 패배하고 맙니다. 분열과 내분은 국력을 약화 시키기 때문에 모든 나라들은 갈등과 문제를 해결해 나라를 지킬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6C에는 술탄 칼리프 제도가 시행되면서 분리되었던 정치와 종교의 수장이 다시 하나로 합쳐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슬레이만 1세에 헝가리를 정복했으며 교황과 에스파냐가 힘을 합친 군대와 해전에서도 승리하면서 지중해 무역을 독점합니다. 17C-19C 쇠퇴하면서 헝가리를 상실하고 러시아가 남하하면서 압박을 받았고 그리스도 독립을 선언합니다. 이 당시 군사제도는 군사적 봉건제를 바탕으로 충성을 맹세하면 땅을 주는 방식의 티마하르 제도가 있었고 술탄 친위부대인 예니체리가 있었습니다. 예니체리는 행정이나 교육등에도 관심을 가지면서 다양한 활동을 보여줍니다. 문화에서는 비잔티움과 이슬람 문화 즉 동서 문화의 융합을 보여주는 술탄 아흐메드 사원과 슬레이만 사원이 있습니다. 종교에는 관용적이었고 세금만 납부하면 다른 종교를 믿어도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6강에서 캡쳐한 사진-오스만 제국의 쇠퇴


오스만 제국의 근대화 운동을 살펴보면 1839년 탄지마트가 군대, 교육, 행정등을 개혁을 했고 미드하트 파샤라는 인물이 미드하트 헌법과 연관되는데 이 헌법으로 내각각책임제가 실시되었지만 기득권과 보수파의 반발과 열강의 간섭으로 실패로 돌아갑니다. 러시아와 튀르크 전쟁이 반발하면서 피해를 입고 왕에 힘을 싣어주자는 전제정치부활을 실시하는데 이에 반대한 청년 튀르크당이 혁명을 합니다. 헌법을 부활시키고 개혁을 하는데 여성지위상승을 요구했고 교육과 연론을 개혁했습니다. 하지만 극단적 튀르크 민족주의는 아랍민족주의를 자극하여 대립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먼가 기득권과 새로운 세력등이 갈등을 만들어내면서 일이 잘 해결되지 않는 모습을 많이 보는것 같습니다. 이념이라는 것이 작은 차이지만 다툼과 전쟁으로까지 이어지는 모습을 보고 정말 이념을 작다고만 생각하지 못할것 같습니다.


1 세계대전을 통해 패전국이 된 오스만 제국은 터키공화국이 됩니다. 술탄제를 실시하지 않았고 대통령으로 무스타파 케말을 선출합니다. 오스만 제국이 터키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터키에 대해 세계테마기행에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서아시아사를 공부하고 다시 들어보면 또 다른 느낌이 들것 같습니다. 1차 세계대전에 영국은 후세인, 맥마흔 서한으로 아랍국가의 독립을 약속하고 벨푸어 선언을 통해 유대국가 독립을 약속합니다. 2가지 약속으로 인해 중동전쟁이 일어나는 원인이 됩니다. 인도사에서도 영국이 1차 세계대전을 도와주면 인도의독립을 약속했는데 약속대로 하지 않고 더 강합적인 정책을 핀 일이 생각나기도 하고 이중 약속으로 분쟁이 일어났다는 점은 아쉬운 점입니다. 뉴탐스런 세계사 6강 서아시아사를 통해서 그동안 잘 모르고 어렵다고 생각했던 내용을 조금은 이해하고 배울수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앞으로의 강의도 집중해서 듣고 잘 필기하여 내용을 잘 전달하고 느낀점과 생각을 쓸수 있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