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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소식/해외 이야기

위대한 과학자 뉴턴에 대하여

뉴턴은 코페르니쿠스로 부터 시작된 과학혁명 사건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16C 코페르니쿠스는 천체 회전에 관해서라는 책을 펼치며 지동설을 주장했고 17C 케플러가 화성운동을 관측해 타원운동을 증명해 지동설을 입증했습니다. 이후 갈릴레이가 망원경을 활용해 발견을 했고 낙하실험등을 했으며 그 후 뉴턴은 만유인력의 법칙을 펼치며 기계론적 우주관을 확립했습니다. 뉴턴은 프린키피아라는 저서를 통해 자신의 연구와 업적을 알렸고 운동3법칙인 관성의법칙, 힘과 가속도의 법칙, 작용 반작용의 법칙을 결합해 행성의 타원운동은 물론 지상과 천상의 여러 운동들을 수학적으로 설명했습니다. 만화로 된 프린키피아도 있어서 관심이 생겼고 기회가 된다면 프린키피아 책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뉴턴은 갈릴레이가 사망할 시점인 1642년에 태어납니다. 뉴턴의 아버지는 뉴턴이 태어나기 3개월전에 죽었고, 뉴턴의 어머니는 재혼을 하면서 할머니에게 맡겨집니다. 집안을 지탱해주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뉴턴의 가족과 뉴턴은 힘든 생활을 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혼자 생각하는것을 좋아했으며 뉴턴은 자기 자신과 대화를 통해 호기심을 키워나갔습니다. 어렸을적 곡식을 빻기 위해 움직이는 물레방아 모형을 만들고 작동원리를 알아내는듯 유능한 모습을 보였으며 다양한 탐구정신을 높게 평가한 선생님의 추천으로 어머니를 설득하여 1661년 케임브리지 대학의 트리니지 칼리지에 입학했습니다. 어머니는 뉴턴을 농부로 키우려고 했지만 뉴턴의 재능을 알아본 선생님의 추천으로 유능한 과학자가 나올수 있어서 다행인것 같습니다.



뉴턴은 대학교에서 아리스토텔레스, 갈릴레이, 케플러, 보일, 데카르트에 대해 배우고 공부했고 성적도 우수하여 장학금을 받아 대학생활을 잘 보냈으며 학사학위를 받고 졸업했습니다. 졸업하기 조금 전에 흑사병이 돌아 학교는 휴교에 들어갔고  고향에 돌아가 학교가 다시 시작할때 까지 독학으로 빛과 색깔에 대한 기존과 다른 이론을 고안해내었고, 물체의 원운동을 연구했으며 미적분의 기초를 만들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데카르트의 연구를 바탕으로 빛과 색깔에 대해 연구하면서 자신의 이론을 탄탄히 하면서 반사 망원경을 제작하였고 이로 인해 과학계에 이름을 알릴수 있었습니다. 빛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며 8년간의 시간을 바탕으로 쓴 '빛과 색에 관한 새로운 이론'의 논문에 당시 학자들이 호의적이지는 않았습니다. 광학과 관련된 당시의 논물이나 글을 출판하지 않았다가 오랜 세월이 지나 책으로 남겨 그의 연구와 노력을 알릴수 있었습니다. 화가와 같은 경우에 자신이 살아 있을때는 작품들이 빛을 못 보다가 자신이 죽은후 작품들이 좋은 평가를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뉴턴과 같은 경우 조금 늦긴했어도 살아있을때 자신을 알릴수 있어서 괜찮았던것 같습니다.



뉴턴은 만유인력을 통해 태양계의 운동을 설명하기에 이릅니다. 태양과 행성에 작용하는 힘은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는 것을 통해 타원운동의 원리를 밝혔으며 프린키피아를 통해 만유인력 개념을 완성했습니다. 프린키피아의 원제목인 '자연 철학의 수학적 원리'도 데카르트 '철학원리'를 생각하고 지어진 이름으로 뉴턴은 데카르트에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뉴턴은 연금술에도 관심이 많고 연구를 많이 했는데 뉴턴의 자료를 사들였던 경제학자에 의해 연구가 알려졌습니다. 연금술 연구를 통해 많은 실험과 생각을 하는 동시에 만유인력에 대해서도 탄탄한 연구를 하며 뉴턴은 프린키피아로 아주 유명해집니다. 정계에 입문하기도 했으며 위조 동전을 방지하는 기술을 통해 조폐국장에 임명되기도 합니다. 카리스마있는 리더십을 통해 왕립학회의의 회장을 역임했으며 왕실로 부터 기사로 임명되는데 과학자로써는 처음있는 일이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