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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물/영상자료

세계사 서양사 19세기 영국의 발전에 대하여

이번에 알아볼 내용은 19세기 영국의 모습입니다. 영국은 급진적이지 않고 의회를 통한 점진적인 개혁이 이뤄졌습니다. 비국교도들이 공직에 취업할수 있도록 1828년에 심사법을 폐지하여 비국교도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인정했으며 가톨릭교도들이 차별을 받았던 내용도 가톨릭교도 해방법이 1829년 시행되면서 불만이 해소되었습니다. 차별이 있는 사회보다는 차별 없이 누구에게나 공평한 사회가 바람직하며 추구되어야 하는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1830년 프랑스의 7월 혁명이 일어날 때즘 영국에서는 1차 선거법 개정이 1832년에 산업혁명의 결과로 많은 인구이동이 시작되면서 부정한 방법으로 선거가 진행되었던 부패선거구가 개정되었고 도시 자본가의 선거권이 확대되었습니다. 하지만 노동자의 선거권은 부여되지 않았기 때문에 노동자의 참정권을 요구한 차티스트 운동이 벌어져 인민헌장까지 나왔습니다. 노동자 조직이나 운동은 점차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국민청원 서명운동과 전국 조직 결성이 확대되어 나간것 입니다. 1848년 프랑스 2월 혁명때 분위기에 맞춰 3차례 570만 청원 서명을 4월 런던에서 대청원 시민운동을 진행하였지만 당시에는 실패로 돌아가고 노동자의 참정권 보장은 나중으로 미뤄졌습니다.



1848년 프랑스 2월 혁명 이전 1945년에 영국에서는 지주를 보호해 주던 곡물법이 폐지 되었습니다. 곡물법은 타국에서 수입해온 곡물에 관세를 매겨 자국의 지주들을 보호한 제도 이었는데 이는 일반 시민이 비싼값에 곡물을 사 먹어야 하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곡물법이 폐지되면서 일반 시민은 싼 가격에 곡물을 얻을수 있었다고 합니다. 1949년에는 항해법의 폐지되었습니다. 항해법은 네덜란드의 중계무역을 억제하기 위해 들인 법이었다고 합니다. 항해법은 식민지에 보급되는 물품은 영국을 거쳐야 하고 배의 선원도 절반은 영국인이어야 하고 배 또한 영국배 이여야 했던 법이었습니다. 이런 항해법으로 인해 네덜란드는 중계무역에서 얻는 이익이 줄어들어 결국 영국과 네덜란드는 3차에 걸친 전쟁을 했다고 합니다.


당시 영국의 노동 조건이 아주 열악했다고 합니다. 현재에 대부분의 회사는 8시간 업무를 일반적으로 시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영국에서는 12시간 이상의 노동이 시행되고 있었고 9세 이하 아동도 노동에 투입되었다고 합니다. 최대 노동 시간도 12시간으로 하고 9세 이하 아동은 노동하지 않도록 했으며 보통 교육법으로 노동자의 자녀에 교육이 실시되어 불만을 해소 시켰다고 합니다. 지금은 생각하기 힘들정도로 많은 시간을 일해야 했고 아주 어린 나이의 어린이들도 노동에 투입되었다는 말을 들으니 안타까웠고 현재 사회가 많이 나아 졌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지금까지 세계사 서양사 19세기 영국의 발전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