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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물/영상자료

세계사 서양사 자유주의 확대와 민족주의운동에 대하여

뉴탐스런 세계사 26강에서는 자유주의 확대와 민족주의운동에 대하여 류성완 선생님께서 강의를 하셨습니다.나폴레옹의 등장으로 많은 변화를 겪었던 유럽은 무리한 러시아 원정으로 나폴레옹이 힘을 잃자 변화의 모습이 드리웁니다. 오스타리아 재상 메테르니히가 주도하여 전통주의와 복고주의를 지향했는데 이는 옛 왕조로 회귀와 프랑스 혁명 이전으로 회귀를 목적으로 했습니다. 자유주의와 민족주의를 탄압했던 메테르니히 하에 이뤄진 체제를 빈체제라고도 하고 오스트리아 빈에서 회의가 이뤄졌다고 해서 빈 회의라고도 합니다. 러시아와 오스트리아 프로이센이 신성동맹을 통해 빈 체제를 공고히 하였고 나중에 영국이 추가로 참가했으며 프랑스도 조금은 이에 따르는 세력이 생겼었습니다.


빈 체제, 빈회의에 반대하고 동요했던 세력은 자유주의와 민족주의를 확산시키고 권장해 나갔습니다. 독일에서는 학생 조합인 부르셴샤프트가 결성되었고 이탈리아에서는 카르보나리당인 청년 이탈리아당이 있었습니다. 러시아에서는 청년 장교들이 주도한 데카브리스트의 난이 있었으며 그리스는 오스만 제국으로 부터 독립을 하였습니다. 라틴 아메리카의 독립운동도 일어나는데 에스파냐나 포루투칼로 부터 독립을 했는데 이를 주도했던 사람으로 볼리바르와 산마르타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라틴 아메리카 독립에서는 미국 대통령인 먼로가 선언한 먼로 선언이 있었습니다. 먼로 선언을 살펴보면 미국이 라틴 아메리카의 독립을 지지하는 내용이 있었고 에스파냐나 포루투칼의 서구 열강의 불간섭 주의 원칙을 천명해 라틴 아메리카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확장해 나갔습니다. 미국이 워낙 강대하고 파워가 있어서 역사가 아주 오래 되었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는데 생각보다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은 놀랐습니다. 


26강에서 캡쳐한 사진-라틴 아메리카의 독립


1830년 프랑스에서는 7월 혁명이 일어나는데 그 배경으로는 다음과 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부르봉왕조가 부활하여 루이 18세가 왕으로 추대되었고 이어 샤를 10세가 등장하여 언론과 출판의 자유를 억압했으며 의회를 해산하고 전제정치를 강화했습니다. 강력한 정치는 반대를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반기를 든 시민봉기에 의해 시민의 왕으로 불리는 루이 필리프가 7월 왕정이라는 명칭을 달고 프랑스에서 왕으로 즉위합니다. 루이 필리프는 입헌군주제를 실시했지만 제한선거를 통해 노동자에 반감과 불만을 샀으며 지주와 자본가를 옹호하여 반발이 더 심해졌습니다.


1848년에는 2월 혁명이 일어나는데 그 배경은 7월 왕정이 보수화 되어 노동자를 억압하고 선거권 제한에 대한 불만이 표출된것 입니다. 산업 혁명이 일어나 상공 노동자 계층이 발전했고 사회주의도 확산되고 있었습니다. 봉기에 의해 7월 왕정은 붕괴했고 임시정부가 수립되고 보통선거와 대통령선출을 하자는 헌법 또한 재정 되었습니다. 2월 혁명의 영향으로 오스트리아에서 3월 혁명이 일어나 빈 체제의 중심인 메테르니히가 추방되었고 빈 체제 역시 붕괴되었습니다. 이 즘해서 헝가리가 독립했고 독일에서는 프랑크푸르트 국민회의가 개최되었으며 이탈리아에서는 청년 이탈리아당이 통일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2월 혁명이후 제2공화정이 들어서자 지도자로 선출된 나폴레옹의 조카인 루이 나폴레옹은 국민투표를 통해서 제2 제정을 실시해 황제에 즉위 합니다. 나폴레옹 3세로도 불린 루이 나폴레옹은 상공업을 육성하고 대규모 토지공사를 했으며 공공사업을 확대했고 특히 대외 확장에 많은 힘을 쏟았습니다. 러시아와 오스만이 싸웠던 크림전쟁에서 영국과 함께 프랑스는 오스만을 지원했으며 인도에서 2차 아편전쟁에도 참여했습니다. 멕시코 원정도 떠났으며 이탈리아 통일 전쟁에도 가담했습니다. 하지만 비스마르크가 이끄는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배 하면서 힘을 잃습니다. 


너무 많은 전쟁에 참여 했기 때문에 전쟁을 치뤄야 하는 사람들은 많이 힘들고 어려웠을 것 같고 적당한 대외 확장을 했다면 나폴레옹 3세 체제가 더욱 오래 지속될수 있었을 것입니다. 나폴레옹 3세를 이어 노동자와 시민의 자치 정부인 파리코뮌이 있었으며 그 이후 1875년 제 3 공화국이 있었습니다. 나폴레옹의 큰 업적과 발자취를 따르기라도 하듯 나폴레옹 3세도 진취적으로 프랑스를 이끌어 가는 모습을 보였지만 조금은 과도한 정치가 발목을 잡았던것 같습니다. 뉴탐스런 세계사 강의를 통해 많은 것을 듣고 배우고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30강 까지 4강이 남았는데 남은 강의도 잘 듣고 내용 요약 및 소감을 쓰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