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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물/영상자료

세계사 서양사 신항로의 개척 강의 내용 및 느낀점

뉴탐스런 세계사 21강에서는 신항로의 개척이라는 주제로 류성완 선생님께서 강의를 하셨습니다. 6C-10C 마야 문명은 지금의 중남미 지역에 자리잡았었는데 피라미드 신전이 있었고 0의 개념이 있었으며 20진법을 사용했습니다. 태양과 달 ,금성등을 육안으로 정밀 관찰한 천문학 또한 발전했었고 농경기술이 발전했습니다. 멋들어진 궁전과 조각미술과 상형문자를 가진 문명이었습니다.


13C-16C에 역시 지금의 중남미 지역에 아스테카 문명이 있었습니다. 수도를 테노치티틀란으로 했으며 그림문자가 발전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아즈텍이라고 알고 있는 이 문명이 아스테카 문명입니다. 테노치티틀란의 섬 중앙은 정방형으로 해서 신전 구역이었으며 섬 뒤쪽으로 홍수 방지용 제방이 있었습니다. 테노치티틀란은 여의도 면적의 3-4배 정도로 인구는 15만-20만 정도 이었습니다. 아쉽게도 아스테카 문명은 에스파냐에 의해 멸망당하고 맙니다.


역시 13C-16C의 잉카문명은 수도를 쿠스코로 했으며 아주 유명한 마추픽추가 있습니다. 태양신을 숭배하였으며 문자가 없는 대신 키푸라는 새끼줄 매듭을 이용한 의사소통을 했으며 계단식 농법은 지반을 강하게 하고 농사를 지을수 있어 옥수수나 감자를 생산했습니다. 마추픽추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상을 본적이 있는데 높은 지역에서 물을 얻어내는 방법과 물을 이동시키는 수로의 정밀함과 기술력은 대단하며 높은 지역에서 큰 돌들을 옮기고 쌓는 정신과 기교는 감탄을 하지 않을수 없도록 만듭니다. 이런 잉카 문명도 에스파냐에 의해 멸망당하고 맙니다.


21강에서 캡쳐한 사진-아메리카 문명


에스파냐의 진출을 가능하게 했던것은 신항로의 개척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동방산물인 향신료와 비단의 수요 증가와 동방에 대한 호기심 상승, 나침반과 조선술, 향해술과 같은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해 신항로가 개척될 수 있었습니다. 포루투칼과 에스파냐가 아메리카에 많이 진출했는데 포루투칼은 바르톨로메우디아스가 당시 폭풍의 곶으로 불렸고 이후에 희망의 곶으로 불리운우는 희망봉을 발견했고, 이후에 바스쿠다가마가는 희망봉을 거쳐 인도항로를 개척해 물품을 팔아 많은 이득을 챙겼습니다.


에스파냐는 콜럼버스가 1492년 서인도제도를 발견하였는데 이는 콜럼버스가 죽기 전까지 이곳을 인도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서인도제도라는 말이 붙었다고 합니다. 마젤란은 1519-1522년 바다를 통해 최초 세계일주를 했지만 필리핀에서 전투 끝에 죽어 살아 돌아온 동행인들에 의해 지구 구형설이 입증되었습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지구는 돈다는 사실을 주장하다 죽을 뻔 하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지동설이 맞다는 것이 들어났습니다. 지구 구형설과 지동설이 입증되고 인정되기 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과학자들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과학은 점점 발전한다는 사실을 알 있었습니다.


21강에서 캡쳐한 사진-신항로 개척 경로


신항로 개척으로 인한 원주민의 상황은 매우 좋지 못했습니다. 문명이 파괴되었으며 금과 은을 채굴하는데 노역을 해야 했기 때문에 노역도중 죽는 인원도 많았을 것입니다. 서양 열강에서 들어온 사람들과 질병으로 내성이 적은 원주민들은 전염병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고 서양 열강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주민과 아프리카에서 데리고 온 흑인 노예의 노동력으로 플랜테이션을 운영했습니다. 혼혈인의 증가도 많이 늘어난 시절이기도 합니다.


신항로 개척으로 인해 무역의 중심지는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바뀝니다. 막대한 금과 은이 유입되면서 화폐의 가치는 하락하고 물가는 폭등하며 가격혁명이 일어났고, 대자본의 축적은 상업혁명을 일으켰습니다. 감자와 고구마, 담배, 옥수수와 은 신작물도 전래되었습니다. 강의를 통해서 신항로 개척에 대해 파악할수 있었습니다. 이어지는 다음 강의도 잘 듣고 글을 쓰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