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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물/영상자료

하루만에 끝내는 한국사 제5강 남북국시대 강의 요약 및 느낀점

발해는 고구려가 멸망한지 30년이 지난 698년에 대조영에 의해 건국되었습니다. 당나라가 신라와 손을 잡고 전쟁에서 승리한후 발해의 영토 지역을 관리하고 있었는데 여러 이민족이 있었던 사람들이 힘을 모아 발해를 건국할 수 있었습니다. 대조영은 고구려 소속인지 말갈의 소속인지 불분명 했지만 고구려와 말갈의 두 성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귀합하여 발해를 통치해 나갔습니다. 고구려인에게는 중앙정치를 맡기고, 지방정치는 말갈족에게 맡기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발해의 무왕은 당과 신라를 견제하며 강경책을 썻지만 문왕 시절에는 당과 친선관계를 맺기도 했습니다. 중국의 발전된 문물의 힘을 생각했었던 것 같습니다. 발해는 선왕시절 최선정기를 맞이하는데 막강한 국가를 뜻하는 해동성국이라는 칭호가 붙었던 시절입니다. 발해의 애왕 시절에 이르러 발해는 거란족에게 멸망을 당하고 맙니다. 발해는 멸망당했던 고구려의 틀을 가지고 있었지만 중국식제도인 3성 6부제를 도입에 중국에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줬습니다. 수도는 5개를 지정하여 돌아가면서 수도를 바꾸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정해공주묘에서는 발해가 고구려의 영향을 받았다는것을 알수 있고 정효공주묘에서는 당의 영향을 받았다는것을 알수 있습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를 신라 중대라 부릅니다. 신라 중대에 신문왕은 귀족을 대표하는 상대등을 약화시키고 왕의 명을 받드는 최고 행정부서 집사부의 수장인 시중의 역활을 강화시키므로써 왕권강화에 힘을 썻습니다. 관료전이라는 보너스 격의 제도를 만들었으나 당시 녹읍을 폐지 하여 귀족에 비난을 받았습니다. 녹읍은 관리들이 세금을 거둘수 있는 권리와 일을 시킬수 있는 노동력 징발권을 포함하고 있는데, 노동력징발권으로 반란과 사병을 일으켜 왕에 대항하는 것을 두려워 하였기 때문에 녹읍을 폐지 하였던 것입니다. 국학이라는 최고의 교육기구를 만들어 인재를 양성했습니다. 상수리제라는 것은 지방을 통제하기 위해 지방 유력집단의 자제들을 불러모아 일종의 인질로 활용했습니다. 자제들의 위험을 감안해 지방 유력집단에 부담을 주는 제도이었습니다. 외사정이라는 제도로 지방을 감찰하고 통제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사 5강에서 캡쳐한 사진-남북국시대의 발해와 신라



만파식적이라는 피리를 만들어 전쟁이 그치고 평화가 오기를 기원했으며, 최대규모의 절인 불국사와 문화적 가치가 높은 석굴암, 가장 오래된 범종인 상원사 종등이 신라의 유명하고 가치있는 보물들 입니다. 불국사 내에는 다보탑, 3층석탑, 연화교, 칠보교, 청운교, 백운교, 금동비로자나불좌상, 금동아미타여래좌상, 사립탑 등 아주 많은 문화재가 있습니다. 불국사와 석굴암에 어린 시절 학교 여행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잘 꾸며진 나무나 돌들 문화재들의 멋과 아름다움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신라과 중국과 교역했음을 드러내며 중국에 설치되었던 신라방, 신라원, 신라관, 신라소가 있습니다. 신라방은 코리아 타운같은 거주지를 뜻하며, 신라원은 일종의 사찰을 뜻합니다. 신라관은 숙박시설이며, 신라소는 관청에 해당합니다. 신라와 중국의 당나라가 한때 전쟁을 했지만 서로 교역이 활발했다는 점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이가 좋아질수도 있음을 나타내는것 같습니다. 신라에서는 세금을 내는 사람을 파악하여 민정문서에 정리해 세금관리를 했고 동시전을 통해 상업을 감독했으며 울산항을 통해 대외 무역을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웹사이트에서 캡쳐한 사진-불국사의 모습



신라 하대는 신라가 힘을 잃고 후삼국시대에 이른 후 고려가 정권을 잡는 시절입니다. 신라 하대의 원성왕은 신분제로 진골은 열심히 공부를 하지 않아도 높은 직급에 이르고 그 아래 계급은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오를수 있는 관직이 한계가 있던 점을 독서상품과라는 제도로 바꿔보려고 했는데 귀족의 반발을 일으켰습니다. 지금 시절은 공부를 열심히 하면 아주 높은 직급을 얻을수 있고 나라의 대통령도 될 수 있는 시대입니다. 계급이 있어 오를수 있는 관직에 한계가 있었을때 억울하고 답답한 심정이 있었을것 같습니다. 흥덕왕 시절 완도 부근에 청해진을 세운 장보고가 있었는데 중국과 일본 사이에 해상권으로 부를 축적했습니다. 왕이 있음에도 장보고의 힘이 커지자 장보고를 암살하기에 이릅니다. 신라에는 3대 여왕이 있는데 선덕여왕, 진덕여왕, 진성여왕입니다. 진성여왕시절에 정치에 힘을 쏟지 않아 신라가 많이 약해졌다고 합니다. 이 시절 최지원이라는 6두품 관리가 시무10조의 개혁 조항을 만들었지만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신라 하대에 이르러 시중이 약화되고 상대등이 강화되 왕권이 약해지고 귀족이 강해지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신라의 경순왕에 이르러 신라는 고려의 병합됩니다. 936년 태조 왕건이 고려를 세웁니다.


9세기말 신라의 귀족들이 사치와 향략에 빠져 있을때 전염병과 농사가 잘 안되면서 민심이 흉흉했었고 궁예와 견원을 이 혼란을 틈타 후삼국시대를 엽니다. 당시 후고구려는 궁예가 이끌고 있었고, 후백제는 견원이 이끌고 있었습니다. 왕건은 궁예의 부하이었는데 궁예의 폭정이 심해지자 후고구려를 이끌기 위해 궁예를 몰아냅니다. 당시 불교에서는 교리를 강조하던 교종보다 참선, 마음의 수양을 강조한 선종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으며, 풍수지리와 명당을 강조하는 도교도 발전했습니다. 예전에 들은 말 중에 통일은 한 나라는 오래가지 못한다라는 말을 들어 본적이 있습니다. 나뉘었던 나라를 합쳤을때 합침을 당한 나라의 사람들의 반란이나 반감등이 남아 있기 때문인것 같습니다. 모든 상황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통일한 나라가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한국사 제5강 남북극시대 강의를 듣고 내용 요약 및 느낀점을 써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