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록물/영상자료

하루만에 끝내는 한국사-2강 고조선 내용 요약 느낀점

하루만에 끝내는 한국사-1강 석기시대에 이어 2강 고조선 강의를 들었습니다. 고조선은 조선과 구별하기 위해 고조선으로 하였다는 이야기도 있고 삼국유사를 저서한 일현에 의하면 고조선은 한국사의 처음에 해당하는 나라입니다. 고조선에 연이란 나라에 살았던 위만이 고조선에 망명해 옵니다. 위만은 준왕이 왕으로서 신통하지 않자 준왕을 폐하고 왕이 되어 위만조선으로 고조선을 이어 나갑니다. 위만조선은 기존의 고조선의 기틀을 유지했는데 위만조선은 신문물등으로 강성했지만 중계무역으로 분쟁이 일어나면서 한의 침공을 받아 왕검성이 함락되고 한이 4군 낙랑,현도,임둔,진번을 설치하며 멸망하고 맙니다. 중계무역등으로 고조선이 이득을 챙기고 이와 관련하여 불만이 생기면서 고조선에 위기가 왔다는 점에서 전쟁이 자국이 이익을 위해 일어날 수 있이며 위만이란 사람을 고조선이 받아 줬는데 결국 고조선 배반했다는 점에서 사람을 믿기 힘들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웹사이트에서 캡쳐한 사진-고존선의 영토



BC 10세기 경 고조선은 청동기 시대로써 청동을 이용하기 시작합니다. 청동기 시대에는 벼농사가 시작되면서 더 많은 수확량을 갖다 보니 잉여 생산물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먹고 살만해지고 가진자와 없는 자와의 계급차이가 생겼습니다. 현대에서도 가진자와 없는 자의 차이가 있고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분리가 됩니다. 최초의 국가 고조선도 이런 계급이 생김에 따라 건국되었던 것입니다. 잉여 생산물은 주거의 형태에도 변화를 불러왔는데 부자는 더 부유한 곳에 살았으며 가난한 사람은 더 작은집에 적은것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돈이 있으면 많은 것을 누릴수 있는 자본주의 체체에서 상대적 박탈감등이 큰 문제가 되는것이 사실입니다. 공산주의에서는 이런 문제는 적지만 자본주의의 장점도 있기 때문에 무엇이 더 나은가 말하기 힘들지만 자본주의가 많은 나라에 통용되고 있고 있습니다.


고조선에는 선민사상이 있는데 이것은 단군신화에서 잘 들어납니다. 하나님의 아들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와 곰과 호랑이에게 쑥과 마늘을 먹고 동굴에서 30일을 버티면 사람이 되게 해주겠다고 합니다. 여기서 곰이 끝까지 버텨 웅녀가 되고 웅녀와 결혼한 환웅 사이에서 자란 아들이 단군왕검입니다. 선민사상은 우리 민족이 신과 연결되어 있어 더 특별하고 고귀한 운명임을 들어내는 역할을 해줍니다. 성경속에서도 이스라엘 백성은 선택된 민족으로 하나님과 연결이 되어있습니다. 유대인은 세계에서 뛰어난 사람이 많고 이 세상의 중심에 있는 정말 대단한 민족입니다. 성경을 믿고 교회에 다니면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많이 배우며 하나님이 선택한 민족인 이스라엘의 위대함과 역사의 중심임을 생각합니다.


웹사이트에서 캡쳐한 사진-고조선의 토테미즘과 선민사상


청동기 시대가 되었다고 해서 석기가 완전이 사용되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스마트폰이 나오더라도 처음부터 모두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는 김영준 선생님의 말처럼 청동기 시대가 되었지만 석기가 사용되었다는 것은 반달 돌칼을 보고 알 수 있습니다. 청동은 제작 단가가 비싸고 석기에 비해 물렁했다는 점도 석기의 사용이 청동기 시대에도 있었음을 알수 있는 대목입니다. 청동기 시대의 대표 유물로 거친무늬 거울과 비파형동검을 들 수 있고 민무늬늬 토기와 미송리식 토기를 들수있습니다. 그리고 무덤으로 고인돌과 돌널무덤은 석관묘를 고조선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청동기 유물은 반달돌칼은 정교하고 세련된 석기 제품으로 가운데 구멍이 뚫려있는데 이는 추수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비파 즉 바이올린과 비슷하다 해서 비파형동검이라고 불리는 유물은 제작하는데 돈이 많이 들고 희소성이 높아 권위를 나타내며 제사 용품으로 쓰였다고 합니다. 민무늬 토기를 보고 생각할 수 있는점은 석기시대 유물인 빗살무늬 토기의 빗살이 굽다 깨지는것을 방지해 주었다면 빗살 없이도 토기가 유지될수 있다는 점에서 더 발전된 유물이라는 것을 들어냅니다. 고조선의 영토를 생각해볼수 있는 미송리식 토기도 발전된 토기로 거론됩니다. 특징으로는 양끝에 손잡이가 달려있다는 점이 있겠습니다.


한국사 2강에서 캡쳐한 사진-청동기 유물



청동기를 나타내는 고인돌은 북방의 탁자식 고인돌과 남방의 바둑판식 고인돌이 있는데 북방은 날씨가 추워 시체의 썩는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더 높고 개방적인 반면 날씨가 더워 시체 썩는 속도가 빠른 남방은 높이가 낮고 덜 개방적인 고인돌의 모습을 보입니다. 지배계급을 상징하는 고인돌은 수백에서 수천명의 사람이 동원될 만큼 만들기가 쉽지 않은데 기둥을 먼저 세워놓고 흙을 쌓아 통나무 레일을 깔고 큰돌을 굴려 기둥위에 얹어 놓은후 흙을 제거해 만드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높은 지배계급이 아니면 고인돌을 만들수 없었기 떄문에 지배계급만이 가능한 작업이었던 것입니다. 이전에 썻었던 페루의 잉카문명에 대해 글을 쓰면서 느겼지만 잉카 문명이 만들어지는데 황제의 지도로 많은 사람이 수고를 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배하는 계급, 높은 지위를 얻기 위해 노력하며 그들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수고하고 노력하는 점이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웹사이트에서 캡쳐한 사진-고인돌의 모습



BC 5세기 경은 초기 철기 시대로 철기가 시작되면서 농업생산이 늘었나고 풍요로워 졌지만 전쟁이 급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고대국가들이 성립되어 갔고 신앙을 철기제품으로 바위에 여러것들을 그려내기도 하였습니다.

철기시대 유물로는 거푸집과 잔무늬거울, 세형동검과 널무덤, 독무덤 등이 이있고 중국과 대외교류를 하였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중국돈인 명도전과 중국의 붓등이 있습니다.


거푸집은 세형동검을 만들때 틀로 쓰였던 유물이며 세형동검은 비파형동검보다 가늘고 날렵해진 특징이 있습니다. 명도전은 면도칼처럼 생겼는데 구멍이 뚫려서 허리에 줄로 연결해 차고 다녔는데 칼처럼 생긴 돈의 일종입입니다.

초기 철기시대에 중국과 교류를 활발히 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조선은 당시 중국의 한과 한반도 남쪽의 진 사이에서 중계무역을 했었는데 한과 중계무역에 대한 갈등으로 인해 한에 의해 멸망하고 맙니다.


한국사 2강에서 캡쳐한 사진-초기철기 유물



고조선은 삼국유사의 일현에 의하면 BC2333년이지만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청동기 시대와 초기철기가 BC 10C, BC5세기로 고조선의 시작은 BC2333과 잘 맞지 않아서 조금은 의문도 있었지만 고조선에 특징에 대해 알아 보겠습니다. 단군왕검이 시작한 고조선은 제사장과 군장 즉 제사와 정치를 주관했던 사람이 일치하는 제정일치 사회이었습니다. 수도 왕검성의 위치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지만 북한의 어느 한 지점일 거라는 예상이 있습니다. 건국이념은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한다이며 중국의 한과 한반도 남쪽의 진과의 삼각교역을 하였습니다. 8조법중 3가지 법만 지금에 전해지는데요, 살인한자는 사형에 처한다로 생명존중을 나타내었고, 남을 상해한 자는 곡물로 보상한다에서 농경사회와 사유재산을 인정했다는 점을 알 수 이있습니다. 도둑질한 자는 노예가 되고 배상해야한다에서는 사유재산과 계급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곰과 호랑이의 이야기를 통해 토테미즘을 하나님의 아들 환웅의 스토리는 선민사상을 들어냅니다. 고조선에 대해 중,고등학교 때 배웠던 내용을 다시한번 생각하고 떠올리며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제 1강 석기시대에 이어 2강 고조선의 내용을 요약하고 느낀점을 써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