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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정보/생활과 과학

토머스 에디슨에 대하여

미국의 유명한 발명가로 토머스 에디슨이 있습니다. 에디슨은 1847년 2월 11일 오하이오주 밀란에서 태어 났습니다. 에디슨의 아버지는 제재소를 운영했는데 에디슨은 그의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호기심과 궁금증이 많았고 집중을 잘 못하고 산만하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쫓겨나 그의 어머니가 교육을 맡아 키워졌습니다. 집안이 가난하여 철도에서 물건을 팔며 일했고, 시간 절약을 위해 기차 안에 실험실을 마련하여 연구를 하였습니다. 실험실이 불타면서 차장에게 맞았는데 청력이 약화되면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적게 하며 연구에 더욱 몰두 하였습니다. 15세 때 전기와 관련한 지식을 배우고 경험을 쌓아 1868년에 전기 투표기록기를 만들어 그의 첫 특허를 받았습니다. 그 다음해에는 주식상장표시기를 발명했고, 뒤를 이어 인자전신기, 이중전신기, 탄소전화기, 축음기, 백혈전구, 영화 촬영기, 영사기, 자기선광법, 축전기 등을 발명하였습니다.


에디슨의 발명중에서 백열전구를 개선시키고 발전시킨것은 아주 중요한 사건이었는데 필라멘트 재료로 백금선이냐 탄소선이냐 따져봐야 했는데 적당한 탄소선 사용이 적당하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1878년부터 백열전구에 몰두한 그는 40시간이나 지속되는 백열전구를 만들었는데 필라멘트 재료로 대나무가 적당하다는 판단을 하고 일본 교토 부근에 나는 대나무를 사용했습니다. 그는 전구를 보급하기 위해 소켓, 스위치, 안전퓨즈, 적산전력계, 배전방식등을 고안했고 높은 발전기와 배전판의 설계와 전등의 부대시설의 시스템을 갖추어 전구를 널리 사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에디슨의 노력은 전자공학 발달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전구 특허권을 둘러싼 소송이 있어 경제적으로 이득을 많이 챙기지 못했습니다. 그는 대학강의를 싫어 했는데 획일적인 시스템으로 가르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 있었습니다. 만약 에디슨이 일반 교육을 받았다면 특출난 발명가가 될 수 없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식백과에서 캡쳐한 사-토머스 에디슨



에디슨은 축전지를 만드는데 무려 2만 5천 번이나 실패했는데 그는 그 실패에 대해 2만 5천번의 실패가 아닌 2만 5천번 축전지가 작동하지 않는 방법을 안다고 말했고,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만들어진다고 말해 노력이 얼만큼 필요한지에 대해 말했습니다. 에디슨은 14년 동안 하루 20시간씩 일을 하며 엄청난 양의 발명을 이뤄나갔는데 일각에서는 발명이라기 보다는 실용실안 즉 조금 바뀌고 보안하여 더 나은 물건으로 만들어 보급했다고 말하며, 창조라기보다는 모방과 변형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생활에서 더 유용한 물품을 만들어 내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편리함과 간편함을 주기에 그의 일대기를 깍아 내릴수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에디슨은 테슬라라는 사람과 갈등을 빚었는데 유명한 전기자동차의 이름이 테슬라 인것을 생각해 보면 테슬라가 전기에 대해 유명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에디슨은 직류를 선호했고 발전시켰고, 테슬라는 교류를 선호하고 발전시켰다고 합니다. 에디슨은 교류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전기의자를 만들어 테슬라와 대립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직류든 교류든 각각 알맞은 사용처가 있고 적당한 방식이 있기 때문에 무엇이 낫다고 말하기 힘들지만 에디슨과 테슬라의 선의의 경쟁이 있었기 때문에 전기에 관한 지식과 발명이 이루어지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초등학교에서 발명대회를 나간 적이 있는데 담당 선생님이 정말 발명에 대해 잘 알고 많은 대회에서 학생이 수상하도록 지도하셨습니다. 소리전달 원리탐구 실험기라는 발명이었는데 종이컵에 실을 매달아 소리의 떨림을 보듯이 여러 가지 종류의 줄 가운데 동그란 스트로폼을 끼워 소리가 전달되는 모습을 볼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에디슨의 업적과 그의 일대기에 대해 책을 찾아 보고 그의 장점을 배운다면 생활에 도움이 되고 새로운 영감과 생각이 떠오를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토머스 에디슨에 대하여 글을 써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