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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물/영상자료

세계사 서양사 십자군 전쟁, 중세 도시 성장과 중앙집권국가의 등장에 대하여

뉴탐스런 세계사 19강에서는 십자군 전쟁, 중세 도시 성장과 중앙집권국가에 등장에 대해 류성완 선생님께서 강의를 하셨습니다. 먼저 십자군 전쟁에 대하여 알아 보면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유럽이 안정을 유지하며 농업 생산력이 늘어나 인구가 증가하면서 토지에 대한 열망이 나타납니다. 교황은 동서 교회 통합과 성지회복을 원했고, 기사들은 영지 획득과 전리품에 대한 열망이 있었고, 상인들은 동방무역을 독점하려고 했으며, 농민들은 신분의 자유를 원했습니다. 비잔틴 제국의 황제가 이슬람 세력에 위협을 느끼자 유럽에 구원요청하며 교황 우르바누스 2세가 클레르몽 공의회를 통해 십자군 원정을 선포하면서 약 200년간 7차례에 걸쳐 이슬람국가와 싸운 십자군 전쟁이 일어납니다. 이전 강의를 통해 십자군 전쟁에 대해 궁금하여 십자군 전쟁을 주제로 글을 쓸까 했는데 뉴탐스런 세계사 19강에서 십자군 전쟁을 다뤄주면서 십자군 전쟁에 대해 배울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1차 십자군 전쟁을 통해서 성지회복을 하며 예루살렘 왕국을 건설합니다. 하지만 지속되는 전쟁속에 예루살렘을 잃었다 얻어다 하면서 진정한 의미의 성지회복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7차에 걸친 전쟁중에 4차 십자군전쟁에서는 콘스탄티노 폴리스를 점령하는데 성공하며 라틴 제국을 건설합니다. 강의에서는 1차와 4차 십자군 전쟁에 대해서만 언급이 되는데 십자군 전쟁을 더 상세히 나타내 주는 글을 읽어본다면 십자군 전쟁에 대해 더 자세히 알 수 있을것 같습니다. 십자군 전쟁은 결과적으로 교황의 권위를 하락시켰으며 기사의 권위도 하락시켰습니다. 반면 왕권은 강화되었고, 동방무역이 활발해 졌으며 새로운 문화 자극이 일어났습니다. 14C에 성직자 과세 문제를 두고 아비뇽유스가 일어나 교황청이 아비뇽으로 이주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교황권의 추락을 알린 아비뇽유스는 교회의 분열로 이어져 로마와 아비뇽에 교황을 각각 1명씩 두어 총 2명의 교황이 존재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위클리프와 후스는 교회 개혁 운동을 펼쳤는데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로마 교황의 전통을 인정하며 죽은 위클리프는 이단으로, 후스는 화형에 처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2명의 교황이 있었던 시절도 있어서 신기했고,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로마 교황의 전통을 인정한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1명의 교황 체제로 이어질것이라는 예상을 해봅니다. 교황은 현 시대에도 있으며 크리스트교를 이끌며 많은 영향력을 가진 힘이 있는 직분입니다. 오랜세월이 지났어도 교황은 유지되어 왔다는 것도 대단하며, 교황을 주제로 한 글을 써보는 것도 교황에 대해 알아가는 방법인것 같습니다.


19강에서 캡쳐한 사진-십자군의 원정로


다음으로 중세 도시 성장에 대해 알아보면 농업 생산력이 높아지면서 잉여 생산물의 발생을 통해 시장이 형성되었고 이는 도시의 형성을 앞당겼습니다. 근거리 무역에서 원거리 무역으로 이어지면서 북유럽 무역권의 한자 동맹이 형성되었고, 내륙 무역권도 형성되었으며, 지중해 무역권도 형성되었습니다. 상인들 연합회인 길드도 형성되는데 공동 이익을 추구하며 공동의 안정도 유지했으며 독점권 확보를 통해 경쟁을 통한 출혈을 막으려 했습니다. 가격 경쟁을 통해 싼 가격에 물품을 구입하면 사용자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나 판매자들은 손해를 감수 해야만 하는데 길드는 독점권 확보를 통해 과다한 경쟁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려고 했습니다. 길드는 자치권을 가지고 있었으며 도시 행정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중세 장원은 큰 위기를 통해 해체되어 가는데 노역등으로 지대를 내다가 상품 화폐와 경제가 발전하면서 돈으로 지대를 내는 화폐지대가 시행되었습니다. 곡물의 가격이 상승했으며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죽은 흑사병으로 인하여 사람이 부족하여 농노의 지위가 상승 했고 처우가 많이 개선되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영주들의 속박이 더 심해지기도 하여 이에 저항하는 와트타일러의 난과 자크리의 난 등이 일어났습니다.


19강에서 캡쳐한 사진-중세 유럽의 교역


다음으로 살펴볼 내용은 중앙집권국가의 등장입니다. 영국을 살펴보면 13C 존왕이 실정을 하여 대헌장 승인을 하는데 이는 귀족에 특권을 보장해 주어야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시몽드 몽포르 의회는 영국 의회의 시초가 되었고 성직자, 귀족, 기사,시민이 참가한 모범의회는 신분의회의 기틀을 세웠습니다. 14C에는 양원제 의회로 발전했습니다. 프랑스를 살펴보면 12C에 필리프 2세가 영국령인 것을 많이 획득했고 14C에는 성직자 과세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삼부회를 소집했는데 이는 신분제 의회이기도 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는 프랑스 왕위 계승에 영국은 참견하면서 100년 전쟁을 겪습니다. 프랑스에는 유명한 잔다르크가 등장하는 시절로 100년 전쟁이후 프랑스는 중앙집권국가로 발전합니다. 영국과 같은 경우 100년 전쟁이후 장미전쟁을 거친후 중앙집권국가로 발전합니다. 100년 전쟁과 장미전쟁을 같은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조금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100년 전쟁, 장미전쟁, 잔다르크를 주제로 한 글을 써보는 것도 역사를 알아가는 하나의 방법이 될것입니다. 독일과 같은 경우 13C에 대공위 시대라 하여 황제가 없던 시절도 있었고 14C에는 황금문서라 하여 7선 제후가 황제를 선출하는등 큰 영향력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이과를 선택하면서 역사에 대해 많이 배우지 못했었는데 뉴탐스런 세계사를 공부하면서 많은 지식과 지혜, 간접 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생각해 볼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이어지는 20강 뉴탐스런 세계사도 잘 보고 글을 쓰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