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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물/영상자료

세계사 서양사 프랑크왕국의 발전과 게르만 족의 이동과 봉건사회의 모습

뉴탐스런 세계사 17강에서는 프랑크왕국의 발전이라는 제목으로 류성완 선생님이 강의를 하셨습니다. 흉노로 알려진 훈족이 유럽으로 밀고 들어오면서 게르만족이 서유럽으로 이동하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기원후 4C 훈족의 이동이 일어나고 인구증가와 농경지 부족을 느낀 게르만족이 서유럽으로 이동하는 일이 일어나면서 476년 서로마제국이 멸망합니다. 각 나라가 어떤 진출 방식을 삼느냐에 따라 양상이 달라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를 보면서 남진 정책과 북진정책 중 어느 정책을 쓰느냐에 따라 역사의 모습이 달라졌는데 훈족의 서진 정책으로 게르만족이 서쪽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역사는 상황에 따라 많이 달라질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했습니다. 게르만족에는 고트족과 프랑크족 그리고 반달족등이 있는데 이 중 프랑크족은 근거리를 이동했던 장점이 있었고 크리스트교로 개종하고 삼위일체를 주장하는 아타나시우스파를 밀어주었으며, 로마문화를 수용했던 발전 배경이 있습니다.


17강에서 캡쳐한 사진-게르만 족의 이동


프랑크족은 기원후 5C 경에 메로베우스 왕조가 들어서는데 클로비스가 주축이 되어 왕조를 세웠고 아타니시우스파를 장려했습니다. 기원후 8C에는 카를로스 마르텔이라는 인물이 궁궐 행정을 맡은 궁재로써 총리 즉 재상의 역할을 했습니다. 이슬람의 우마이야 왕조와 싸웠던 투르푸아티에 전투에서 승리를 이끔으로써 크리스트교의 세계 수호를 이뤄냈습니다. 카를로스 마르텔의 아들인 피핀은 카를로스 왕조를 이어나가는데 라벤나 지역을 황제에 기증함으로써 특권을 얻었는데 이는 교황령이 시초가 되었습니다. 피핀의 아들인 카를로스 대제가 왕위를 이어 받고 영토를 확장했으며, 서로마제국이 가졌던 영토를 회복했으며 정복지에 크리스트교를 포교하였습니다.  교황에서 인정을 받아 서로마 황제 대관을 기원후 800년에 받았습니다. 게르만족에 의해 서로마제국이 멸망했는데 서로마 황제 대관을 주었다는 내용은 이해가 가지 않지만 서로마제국이 가졌던 영토를 회복했고 크리스트교를 발전시켰다는 업적을 가지고 황제가 칭호를 주었던 것 같습니다. 이 시대에 카를로스 르네상스라 하여 학자를 우대하며 궁전 학교를 설립하고 라틴문화를 장려하고 고전을 연구했던 것이 있었습니다.


기원후 9C 843년에는 베르됭 조약으로 프랑크족은 동프랑크, 중프랑크, 서프랑크로 분할이 됩니다. 870년 메르센조약을 통해서는 동프랑크와 서프랑크가 중프랑크의 영토를 나눠가지면서 중프랑크는 지금의 이탈리아 지역이 영토가 됩니다. 동프랑크는 지금의 독일이며, 서프랑크는 지금의 프랑스입니다. 독일과 이탈리아 프랑스가 프랑크족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며 세계지도에서의 3나라의 위치에 대해 파악을 할 수 있었습니다. 동프랑크의 오토1세는 마자르의 침입을 격퇴하고 이탈리아 반도의 난을 진압함으로써 신성로마제국 황제대관을 받았습니다.


17강에서 캡쳐한 사진-프랑크 왕국의 분열


9C-11C에는 바이킹으로 알려진 노르만 족의 이동을 통하여 프랑스에는 노르망디공국이 세워졌고 영국에는 노르만 왕조가 들어섰습니다. 이탈리아에는 시칠리아 왕국이 세워졌고, 러시아에는 노브고로드 공국와 키예프 공국이 세워졌습니다. 나라를 새로이 만들었을 만큼 노르만 족의 강력한 힘과 능력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시대 유럽은 지방세력의 성장으로 봉건제도의 성립이 완성되었던 시절인데, 봉건사회는 자급자족적 농업사회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게르만의 종사제는 물자를 공급해주는 것이었으며 로마의 은대지 제도는 땅을 주는것이 었습니다. 주종제에서 주군은 봉신에게 봉토를 주고 충성을 대가로 받았으며 쌍무계약관계로써 주군은 봉신의 과세나 재판 행정등을 간섭할 수 없는 불입권이 있었습니다. 장원제는 종사제와 은대지제도를 합한 제도로 자급자족 경제 단위로써 영주성과 교회 경작지가 있는데 경작지 내용중 춘경지, 추경지, 휴경지라하는 삼포제가 있었고 개방경작을 했습니다. 장원제의 농노는 농민과 노예의 성향을 모두 가지고 있었는데 농노는 부역과 세금, 시설사용료를 내었습니다. 농노는 영주에 예속된 부자유민으로써 거주이전을 하지 못하고 직업선택을 못했던 노예적 요소가 있었던 반면 재산소유와 결혼하여 가정을 이룰수 있는 자유민적 요소도 있었습니다. 뉴탐스런 세계사 17강 강의를 통해 유럽의 모습을 알아 볼수 있어 좋았습니다. 이어지는 18강 강의도 듣고 글을 쓰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