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록물/영상자료

EBSI 뉴탐스런 세계사 2강 인도사 강의를 듣고

남부아시아에 있는 나라로 1867년 무굴제국이 저물고 영국의 통치를 받았다가 이후에 다시 독립을 했습니다. 정식명칭은 인도공화국이며 서쪽으로 파키스탄, 북동쪽으로 중국·네팔·부탄, 동쪽으로 방글라데시·미얀마와 국경을 접한다. 히말라야 산맥을 두고 중국과 국경분쟁이 이어졌고 1962년 전쟁까지 치렀다. 파키스탄과는 독립 당시부터 카슈미르 지역을 둘러싼 영토분쟁을 벌여왔다. 국토면적은 세계 7위이며, 인구는 12억명으로 세계 2위이며 수명은 7평균 70세가 된다고 합니다. BC 1000년경 인더스강 유역에서 갠지스강 유역으로 주 무대를 옮겼고 계획도시인 모헨조다로와 하라파가 있었습니다. 카스트라는 계급제도가 있었는데 가장 상위 계급인 제사를 담당하는 브라만과 왕족이나 힘있는 사람이 크샤트리아 계급을 이뤘고, 평민들이 바이샤를 이뤘으며 최하위 계급은 수두라가 있었습니다. 크샤트리아와 바이샤 사이에서 우파니샤드 철학이 들어오면서 불교가 발전되었는데 불교에서는 깨달음을 얻는 해탈과 너그러운 자비의 마음, 평등사상등이 있었습니다. 불교 외에도 사이나교가 있었는데 사이나교도 평등을 외쳤고 계율을 만들었으며 고행을 했습니다. 작은 생물도 죽이지 말자는 계율은 농민들에 있어서 마음에 들지 않은 내용이라 농민계층에 환영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한글 프로그램으로 간단한 정리


BC 4C 경에 마우리아 왕조가 세워졌는데 갠지스강 유역을 포함하는 지역을 다스렸습니다. 이 시대에는 아소카 왕이 유명한데 불교포교활동을 열심히 했습니다. 민중의 구제보다 개인에 해탈에 더 많은 관심과 비중을 두었는데 부처의 계율을 원칙대로 고수하는 것을 상좌부 불교라고도 합니다. 돌기둥을 세워놓고 그 위에 사자상을 얻어놓기도 했으며 산치대탑이라하여 경주 불국사의 탑과 같은 조형물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1C 경 쿠샨왕조가 들어서는데 특이한 점은 다른 왕조와 달리 갠지스강을 포함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카니슈카 왕때 전성기를 누렸는데 상좌부 불교와 달리 대중의 구제를 목적으로 하느는 대승 불교가 발전합니다.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은 간다라 양식에서 조형물과 미술품이 나왔습니다. 헬리니즘은 그리스 문화와 사상이 들어간 것은데 간다라 양식의 작품들이 서양적인 모습을 보면 영향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향하는 점이 조금씩 달랐던 상좌부 불교와 대승불교에 대해 살펴보면 상좌부불교는 동남아시아로 퍼져 나갔고, 대승불교는 중앙아시아와 동아시아로 펴져 나갔습니다.


2강 인도사에서 캡쳐한 사진-갠지스강 유역이 포함되지 않은 쿠산 왕조의 영역


4C 갠지스 유역을 포함해 장악을 했던 굽타 왕조가 등장합니다. 이 때 힌두교가 등장을 하는데 브라만과 불교, 민간사상이 융합하여 특징적인 사상으로는 윤회와 업, 해탈의 길, 도덕적 행위 중시와 경건한 신앙을 중시합니다. 힌두교도에서는 강물에 몸을 씻으면 모든 죄를 면할 수 있으며, 죽은 뒤에 이 강물에 뼛가루를 흘려보내면 극락에 간다고 생각한다고 하며 갠지스강 유역에는 순례자가 연간 100만명이 찾아온다고 합니다. 인도의 사상과 제도를 집대성하여 쓴 마누법전은 가장 권위있는 법전이 되었고 지금까지도 인도의 사회규범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기원전 3C부터 기원후 3C에 쓰여진 법전이 오랜시간에 걸쳐 통용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법전이 정말 잘 쓰여져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산스크리트 문학이 있었는데 희곡인 샤쿤탈라 서사시인 마하바라타와 라마야나가 있었습니다. 굽타 양식의 조형물로는 아잔타 석굴과 엘로라 석굴이 있으며 자연과학의 발전한 당시 상황에 0의 개념도 이 시기에 잡혔다고 합니다.


2강 인도사에서 캡쳐한 사진-엘로라 석굴 사원



시간이 흐르면서 이슬람 왕조가 인도에서 힘을 발휘하는데 델리 술탄 왕조 때 이슬람교로 개종하는 사람이 많이 있었고 개종을 하지 않으면 비판이나 협박을 하기 보다는 지즈야라고 하는 종교세를 내게 했다고 합니다. 16C가 되어 무굴제국이 들어서는데 악바르 왕이 통치했을때 북인도를 통일 했으며 종교에 관대해 지즈야를 철회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우랑제브왕이 등극한후에는 영토를 늘리려하다 보니 전쟁이 잦아졌고 재정적으로 힘든 상황이 오자 지즈야를 부활시켰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반발해 시크교도와 마라타 동맹등이 나왔습니다. 시크교는 이슬람과 힌두교의 성향을 합친 종교이었습니다. 무굴제국시절 유명 명소는 타지마할이 있습니다. 타지마할은 왕이 아내가 아이를 낳다가 죽은것을 안타깝게 여겨 만든 명소라고 합니다. 해질녁에 타지마할을 본다면 기가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조금 길지 않은 인도사의 2강 내용이었는데 3강에서도 인도사에 대해 다룬다고 합니다. 3강도 집중해서 잘 듣고 글을 쓰도록 하겠습니다.